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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세계를 이해하다

커피라는 세계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

상품으로서의 커피를 발굴한 것은 네덜란드인이었다. 대항해시대, 자바와 수마트라에 커피를 이식한 것도 그들이었다. 19세기의 커피는 식민지시대와 맞물려 또 다른 양상을 보였다. 산업혁명 역시 커피의 활용도를 변화시켰다. 자유의 향기가 짙게 깔렸던 커피의 역사에 노예와 노동자의 땀 냄새가 섞였다. 산업의 시대는 노동의 시간적 확대를 요구했고, 커피는 이를 충족시키는 물질이었다. 커피는 공장의 필수품이 됐다. 그리고 커피나무가 자라지 않는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를 커피경작지로 활용했고, 원주민을 소작 노예로 삼아 착취했다. 18세기 깨어 있는 시대의 동반자였던 커피는 계몽주의와 같은 뜻으로도 여겨졌으나 이제는 달라졌다.

인민의 노동에 커피는 필수불가결한, 비할 나위 없는 에너지원이 됐다. 자본주의의 흐름에 맞춰 금융투기의 대상이 됐다. 커피는 주요 소비국과 생산국이 다르다. 그럼에도 1년 내내 필요한 대량 상품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필요로 하는 곳과 생산하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제국주의 국가들은 커피 묘목을 이식했다. 이것이 현재 커피벨트라는 커피 생산 지역을 형성시킨 계기가 되기도 했다.

커피는 또한 농산물이다. 여느 농산물과 마찬가지로 산지마다 그 맛과 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커피나무가 자라는 자연환경과 재배조건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산지라도 매년 작황 등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좋은 커피를 마시겠다는 욕망은 산지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카길 등의 거대 곡물상업 자본이 쥐고 흔드는 상품시장에서 커피는 자본의 농간에 휘둘리기 쉬운 상품이다. 물론 이들에게는 좋은 커피를 얻기 위함이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돈벌이’가 되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한국의 커피역사는 이 모든 역사와 무관하게 움직였다. 고종이 아관파천(1896) 때 커피를 마셨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국내 최초의 커피 음용이나 일부에서는 아관파천 이전에 궁중에서 커피가 음용되고 있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커피가 적극 전파됐고, 다방문화가 꽃 핀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후 한국전쟁을 계기로 인스턴트커피가 한국인의 일상에 파고들었다. 지금도 한국은 인스턴트커피가 원두커피보다 큰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금 기업형 프랜차이즈가 한국 커피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에는 커피의 근대화 과정을 제대로 겪지 못한 까닭도 있을 것이다. 커피는 한국에서 사상·철학이나 문화·예술을 생리적으로 후원했던 고도의 정치적 물질로서 작동하지 못했다. 상품으로서, 인간의 에너지를 채워주는 비료로서 작동했던 미국 따라잡기에 급급했던 모양새를 보였다. 지금 한국에선 커피가 붐이라지만, 문화적으로나 인식론적으로 척박한 토양일 뿐이다.

그래도 커피의 향과 맛을 더욱 잘 느끼고 싶다고? 어렵지 않다. 커피의 역사를 훑으면서 식민(정치), 노예제, 착취, 정의, 남북관계 등을 생각해보는 것.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멀리 떨어진, 지구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연결돼 있음을 깨닫는 것에서 우리는 커피 한 잔에 깃든 깨어 있음, 각성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인체에서의 혈액순환을 세계관과 연결해 파악한 사람은 세계에 대한 전혀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다. 커피가 주는 매혹은 단순히 추출했을 때의 향미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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